인생을 더 길게 만드는 방법

여행에서 돌아오면 닷새가 한 달처럼 길게 기억되곤 합니다. 같은 닷새가 출근길로 채워졌다면 기억에 거의 남지 않습니다. 뇌과학은 이 차이를 사건의 경계로 설명하고, LLM 메모리 연구도 비슷한 착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 예상이 어긋나거나 맥락이 바뀌는 순간마다 생기는 기억의 경계

뇌는 하루를 사건 단위로 나누어 저장하고, 경계는 예상이 어긋나거나 맥락이 바뀌는 순간에 만들어집니다. 홍콩대 연구(2026)에서 대학생 48명이 일상 활동 영상(80초)을 본 뒤, 나중에 떠올린 하위 사건이 하나 늘 때마다 영상 길이를 약 11~12초 더 길게 판단했고, 일주일 뒤에도 같은 패턴이 이어졌습니다. 세부 내용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는지는 길이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기억 속 시간의 길이가 기억에 남은 경계의 수와 함께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이를 일상으로 넓혀 보면,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이 많았던 닷새가 더 길게 남는 이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1. 반복되는 일상 대비, 경계를 늘리는 새로운 배움과 만남

예상이 잘 맞는 하루에는 경계가 거의 생기지 않아 몇 달이 지나도 떠오르는 장면이 적습니다. 새로운 공부는 단계마다 예상과 결과가 어긋나고, 사람과의 만남은 같은 상대라도 매번 다른 방향으로 흘러 경계를 만듭니다. 억지로 만든 새로움은 습관이 되기 쉬우니 직접 부딪히는 경험이 낫습니다.

  1. 낮은 치매 위험과의 연관성

노인 6,717명을 약 4년 추적한 연구에서 최근 2년 안에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인지장애 위험이 약 31%, 치매 위험이 약 59% 낮았습니다. 노인 221명이 3개월간 매주 15시간 사진 등 낯선 기술을 배운 실험(Synapse Project)에서는 일화기억이 좋아졌고, 단순 사교 모임만 한 집단은 개선이 약했습니다. 2024년 Lancet 위원회는 14가지 위험 요인이 모두 해소된다면 치매의 45%를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다고 추정했고, 사회적 고립과 낮은 교육 수준이 그 요인에 포함됩니다. 뇌를 계속 도전적으로 쓰는 것이 치매 예방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1. LLM 메모리 연구와의 유사성

AI도 긴 대화를 기억할 때 같은 문제를 만납니다. EM-LLM은 모델이 크게 놀라는 지점을 경계로 기억을 나누었고, 이 분절은 사람이 지각한 사건과 강한 상관을 보였으며 여러 과제에서 비슷한 자원으로 RAG보다 나은 성능을 냈습니다. Google의 Titans는 사람이 예상된 일은 빨리 잊고 패턴을 깨는 일은 기억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놀라움이 큰 정보를 우선 저장하고 감쇠 장치로 오래된 정보를 잊게 하는 장기 기억 모듈을 두었고, 200만 토큰이 넘는 문맥까지 확장했다고 보고합니다.

기억에 남는 인생의 길이는 경계를 얼마나 만드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 앞에 서 보는 일,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학습을 시작하는 일이 기억 속 인생을 길게 만드는 소박한 방법입니다. 사람의 기억도 AI의 기억도 연속된 흐름을 어떤 단위로 나누느냐에 따라 무엇이 오래 남는지가 달라집니다.

AI 또는 Super Intelligence가 직업을 빼앗아갈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에 좋은 시대가 왔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Titans + MIRAS (Google Research, 2025) - 놀람 기반 장기 기억 (https://lnkd.in/g7RM7ytR)
홍콩대 (2026) - 회상된 사건 경계 수와 기억 속 지속시간 판단 (https://lnkd.in/guzk_z5x)
Lancet (2024) - 치매 예방·개입·돌봄 위원회 보고서 (https://lnkd.in/g6_gdN4u)
EM-LLM (ICLR 2025) - Human-inspired Episodic Memory for Infinite Context LLMs (https://lnkd.in/gJjQCxfK)

S Rhee @sage1

인지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AI를 연구하는 것을 즐깁니다.